이미지와 해석 L`image et son interpretation (2002) 기본 카테고리
2009.09.03 13:26 Edit
책소개
시각적, 시청각적 메시지의 해석은 아직은 불가사의한 자료들을 변환시키고 보존하는 심적인 활동이다.
메시지 자체의 분석이
메시지의 생산과 수용의 맥락과 관련해 이루어지든 아니든, 그것이 메시지가 지각하도록 제시하는 것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
할지라도, 메시지를 해석하는 수신자가 그것에 대해 이해하고 유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신문
/잡지.비평 혹은 문학이 이미지와 관련해 개진하는 담론에 대한 분석은 본서에서 영화.신문/잡지 혹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다양한
이미지들의 연구와 교대된다. 그렇게 하면서 이 책이 분명히 밝혀내는 것은 관객의 기대이고, 기대의 만족 혹은 실망의 표출이다.
이 책은 작품들의 성격이 어떠하든, 그것들이 대개의 경우 '믿기'에 속하고 공감 유형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유형들의 기억작용은 관객의 참여나 수용성에 따라 조절되며, 결국 그는 조작을 받기보다는 더 자율적이며, 희생자라기보다는 더
유혹을 받는 존재이다.
이미지의 해석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이와 같은 독창적인 접근을 통해, 본서는 시각적 소통과 의미작용의 방식들을 분석하는 모든 사람달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엘리트2000 제공]
표지글
[표지글]
이 책은 작품들의 성격이 어떠하든(기록물 혹은 픽션), 그것들이 대개의 경우 '믿기'(믿음)에 속하는 공감 유형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유형들의 기억작용은 관객(시청자)의 참여나 수용성에 따라 조절되며, 결국 그는 조작을
받기보다는 더 자율적이며, 희생자라기보다는 더 유혹을 받는 존재이다. 이미지의 해석 매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이와 같은 독창적인
접근을 통해, 본서는 시각적 소통과 의미작용의 방식들을 분석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작가소개
미셜 드 몽테뉴 - 보르도 3대학 교수이다. 그녀는 특히 프랑스와 여타 다른 나라들에서 이미지와 오디오비주얼에 대한 수많은 연수교육을 실시하는 데 참여했다. 저서로는 나탕 출판사에서 기획한 ‘128’ 총서 시리즈로 「이미지 분석 서설」과 ‘나탕 시네마’총서 시리즈로 「이미지와 기호(이선형 옮김, 동문선, 2004)」가 있다. [리브로 제공]
역자 김웅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리모주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프랑스 몽펠리에 III대학교에서 앙드레 말로의 소설
전공으로 문학 박사를 획득했다. 학위 논문은 《앙드레 말로의 소설 세계에 있어서 의미의 탐구와 구조화》이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홍익대학교, 건국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연구원과
학술연구교수, 한남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그 동안의 업적으로는 프랑스와 미국 등 국내외 학술지에 앙드레 말로에 관한 논문 20여 편을 내놓았으며, 《앙드레
말로 ― 소설 세계와 문화의 창조적 정복》(프랑스학회 출판 장려상 수상) 《말로와 소설의 상징시학 ― 『왕도』 새로
읽기》《앙드레 말로의 문학 세계 ― 동서 정신의 대화》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또 앙드레 말로의 국제적 전문가로서 한불문화협회와
함께 “서울 앙드레 말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일본의 앙드레 말로 국제학술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뿐만 아니라 자크 데리다, 롤랑 바르트, 폴 리쾨르, 가스통 바슐라르, 피에르 부르디외, 파스칼 브뤼크네르 등의
프랑스 인문서를 40권 이상 번역 소개하여 한국 인문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목차
제1장 ‘…에 대한’ 담론
1. 비평적 담론
2. 문학에서 영화
3. 《마의 산》에서 다른 이미지들
4. 해석적 영향
5. 결론
제2장 관객의 기대
1. 부재하지 사진
2. 보이지 않는 것과 전능한 맥락
3. 세계/가상적/이미지
4. 이미지와 진실
5. 결론
제3장 믿기: 기록 영화와 픽션 사이에서
1. 의도/해석
2. 기록 영화, 역사의 증거?
3. 기록 영화에서 픽션으로 이동: 이동
4. 이미지를 (그럴 법하다고)믿기?
5. 결론
제4장 이미지의 해석: 기억, 틀에 박힌 표현, 유혹 사이에서
1. ‘작용 이미지,’미디어적 이미지?
2. 틀에 박힌 표현과 TV
3. 거친 표현적 몽타주(영화에서 TV까지)
4. 미디어적 이미지와 역설의 수사학
5. 이미지의 분석, 해석 그리고 작품으로의 회귀
6. 회고와 결론
- 총괄적 결론
- 참고 문헌
- 역자 후기
- 색인
[리브로 제공]
역자후기
마르틴 졸리, 김웅권, 동문선, 2009
<이미지와 해석> : 이미지의 작동과 그 메커니즘
문 화적 차원에서 볼 때, 신문/잡지나 영화 혹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등과 같은 온갖 매체가 전달하는 고정된 이미지 혹은 동영상을 통해 이미지와 접촉하기 이전에는 인간은 회화나 문학 작품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것과 만났다.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우리는 그리스 신화와 호메로스의 문학에서부터 상상력을 통한 무궁한 이미지의 세계와 마주한다. 그리스의 문화에서 플라톤 이후로 철학(과학)이 학문의 권좌에 오르고 철학자가 사회의 ‘입법권’을 행사하기 이전에는 시/문학과 시인이 그런 영예를 누리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스발트 슈펭글러 같은 역사가는 《서양의 몰락》에서 그리스 문화의 영혼을 ‘예술적 영혼’이라 명명했다. 그러니까 시/문학과 철학의 건곤일척에서 시가 패배하여 지배적 주도권이 철학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시/문학(조각․회화)은 찬란한 예술적 이미지들을 쏟아내면서 그리스 문화를 주도했던 것이다. 현대 해체철학의 선구자로 인식되고 있는 니체는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플라톤 이전의 신화와 예술 세계에 경도되어 그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보면서 소크라테스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왜 플라톤은 시와 예술을 폄하하고 이미지를 하대했던가? 주지하다시피, 그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세계를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그런 그림자를 모방하여 이미지로 그려내면서 유희를 하는 시나 예술은 그림자의 그림자 차원에 머물 뿐 아니라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던 것이다. 철학이 지배하는 시대가 가고 중세의 종교 시대를 거쳐 다시 철학(과학)의 시대가 도래한 후, 어떤 정점의 지대를 지나자 시와 예술 그리고 이미지는 새로운 탄생을 하고 있다. 플라톤 이래로 이데아적 진리와 이상적 목표를 향한 오랜 금욕의 직선적․역사적 세월이 끝나고 예술과 이미지가 주축이 된 그리스적 문화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 것일까.
이 데아로 표상되는 천상에서 지상으로의 방향 축이 18세기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20세기에 플라톤의 철학이 해체되기까지, 어쩌면 서양 문명은 이와 같은 예술의 새로운 개화를 위해 그토록 기나긴 인고의 담금질을 해왔는지 모른다. 사실 현실의 양면, 빛과 어둠,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참과 거짓까지 온갖 이원적 대립관계들에 대한 인식론적 각성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두 눈을 통한 감각적․감성적 세계를 긍정하고 관념적 이데아를 향한 초월을 단념할 수 있다. 플라톤이 절대선을 주장하는 순간 절대악이 전제되어야 한다. 악이 없는 상황에서는 선이 무엇인지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인식론적으로 선은 악을 그림자나 ‘흔적’처럼 동반하며 악에 일정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선을 행하고 선이 존재하기 위해선 악이 존재해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악을 쓸어버리고 없앨 수 있으며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긍정적 가치들을 추구하기 위해선 반드시 부정적 가치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동물과 달리 의식을 가지고 의미를 추구하는 인류의 어려운 ‘인간 조건’이 있다. 그리스 신화를 상기해보자. 최고신인 폭군 제우스를 비롯해 신들이 선악을 넘어서 유희하는 이미지가 밀려온다. 신화는 이런 인간 조건을 극복하여 예술적 차원에서 불멸화시키고 있다. 불멸하는 신들의 이미지는 니체의 말대로 ‘선악을 넘어서’ 선악을 놀이의 경지에서 구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의 예술과 신화는 인간의 ‘비극적’인 이원적 조건을 초월하게 해주는 유일한 지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 가치들을 수용하는 예술과 신화는 사회적 차원에서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타락할 경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아 마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암시하듯이, 이런 사태를 타개할 길로서 폴리스에서 시인을 추방하고 철인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철학자는 위와 같은 이원적 구조에서 부정적인 가치들의 존재 이유를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니라, 데리다의 식으로 말하면 ‘은폐’했다 할 것이다. 선이 악에 빚지고 있다는 인식은 얼마나 위험한가. 사실 기독교를 들여다보면, 종말론에서 천국(선)과 지옥(악)은 영원히 갈라지지만 천국은 지옥이 있음으로써만 인식론적 가치가 있다. 그러니 천국은 지옥에 빚을 지고 있고, 천국에 진입한 자들은 지옥에서 영벌을 구현하는 존재들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지복을 인식할 수 있으니, 역설적으로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모든 사념의 세계를 초월하고 생성의 세계를 넘어서는 불교적 해탈만이 이런 양면적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플 라톤이 거부한 현실세계, 감각세계, 두 눈으로 들어오는 이미지의 세계는 이와 같은 인식론적 성찰과 맞물려 있다. 플라톤 철학을 음지에서 가능하게 해주는 부정적 요소들이 없어지면 이 철학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다. 이 부정적 요소들은 보이지 않게 이 철학의 바깥에 있는 것 같지만 이미 그 안에 들어와 그것을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규명한 게 해체철학이다. 이렇게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이 해체되었을 때 이원적 현실은 본래의 신화적 힘을 되찾을 수 있고 시/문학과 이미지의 예술 세계는 그리스적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 쩌면 지금 우리는 예술과 이미지가 이런 권리를 회복하는 세기에 살고 있다 할 것이다. 이제 이미지가 침투하지 않은 영역은 없다. 플라톤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이미지에 대해 지녀온 편견이 서구 문화 속에 아직 살아 있지만 말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에 속하고 있음은 관념의 세계에 속하고 있다는 것보다 더 강력하며 우리의 존재를 더 많이 구성한다.” 이미지는 이미 “정신적 기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이미지에 대한 해석의 기본 틀은 문학 작품 속에 있다. 뿐만 아니라 롤랑 바르트의 말대로, 이미지에 대한 모든 해석은 언어적 담론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기호학은 일정 부분 언어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본 서의 저자는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정리한 분류에 따라 그 어떤 작품이든 이것을 해석하는 데 세 가지 의도가 작동하고 있음을 상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의 의도, 작품의 의도, 그리고 독자의 의도가 그것이다. 여기서 한스 로베르트 야후스의 수용 미학 이후 부각된 독자의 의도가 새롭게 각광 받으며 창조적 글쓰기를 생산해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독자는 자신의 교양과 문화적 맥락을 벗어나서는 작품을 이해할 수 없고 의미를 생산할 수 없다. 어쨌거나 해석은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삼각 축이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전개되지만 그 구체적 메커니즘들은 상당히 복잡하다.

저 자는 이미지 해석의 메커니즘들을 밝히는 데 있어서 자신의 연구의 방향과 틀을 서론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연구 내용을 총괄적 결론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가 서론을 읽어보면 이 책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저자가 책의 마지막에서 바르트의 학문적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이 기호학자가 열어놓은 이미지 해석의 지평을 재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는 바르트가 이룩한 업적에서 과소평가되거나 잊혀진 측면들을 짚고 넘어감으로써 학계가 그에 대해 진 빚을 인정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 마지막 부분은 위대한 영감의 소유자는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연구 영역을 개척해준다는 사례를 다시 한 번 확인케 해주고 있다.
방법론적 차원에서 이미지 해석에 대한 집중적 연구서가 국내에 별로 소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서는 이 분야의 탐구에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마르틴 졸리의 <이미지와 해석> : 이미지 해석의 메커니즘|작성자 예파헌